문화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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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의 품으로 돌아온 공주의 유품
고종황제의 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가 입던 옷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24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과 유품 기증식을 갖고 기증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일본으로부터 기증받을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다. 조선시대 여자들이 입던 예복인 아동용 당의(唐衣)와 치마, 아동용 저고리와 바지, 아동용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저고리와 치마 등이다. 아동용 당의(위)와 치마.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인 고종의 딸로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태어났다. 1925년 일본측 요구로 일본 유학을 떠난 덕혜는 20살이 된 1931년 쓰시마 종가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 결혼했다. 하지만 정신병을 앓는 등의 어려운 삶을 살다 1962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 머물다 78세를 일기로 1989년 타계했다. 덕혜옹주의 배우자 소 다케유키는 이 소장품과 결혼할 때 받았던 조선왕실 혼례품을 덕혜옹주의 오빠 영친왕(英親王) 부부에게 1955년 돌려보냈다. 다음해 영친왕(英親王) 부부는 일본 문화여자대학 및 현 문화학원대학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에 이 유품을 기증했으며 1979년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문을 연 이후 이곳에 소장됐다. 임재언 코리아넷 기자 사진 문화재청 jun2@korea.kr ▲ 아동용 저고리(위), 바지(아래).
게시일 2015.06.15. -
지구촌 이웃들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인은?
지구촌 이웃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느끼는 한국인의 이미지는? 직접 한국을 방문하거나 생활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K-Pop이나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느끼거나 가족, 친지들로부터 전해들은 이미지도 있을 겁니다. 한국다움에 관한 여러분의 다양한 느낌,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인에 대한 모습을 사진, 그림, 동영상에 담아 공식홈페이지( www.k-playground.kr)에 보내주세요. 채택된 콘텐츠들에 대해 소정의 시상과 기념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인은?1 ㅇ 접수기간 : 2015년 5월 1일(금) ~ 6월 30일(화 ㅇ 내 용 : 한국다움(인물, 문화유산, 정신, 자연, 생활양식, 대중문화 등)을 담은 사진, 그림, 동영상 ㅇ 자 격 : 국적,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ㅇ 시상계획 ㅇ 선정발표 : 2015년 7월 24일(금)
게시일 2015.06.05. -
코레일과 함께 하는 ‘청자와 고향’, 전남 강진
전라남도 서남부의 강진군은 내륙에 자리하고 있지만, 안쪽까지 깊숙이 파고든 강진만 덕에 내륙과 해안의 매력을 두루 갖춘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뾰족하고 기이한 암석으로 이름난 월출산을 중심으로 영암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 장흥에서 흘러든 탐진강 덕에 내륙은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강진군은 15세기 조선시대, 영암군에 속했던 도강현과 장흥의 탐진현, 이 두 현의 중간 글자인 편안할 ‘강’과 나루터 ‘진’을 따 이름 지어졌다. 군의 총 면적은 500.96㎢이며, 2014년 기준, 40,079명이 살고 있다. 기암괴석이 특징인 강진군 북쪽의 월출산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강진군은 중심에 흐르는 강진만 덕에 농경과 수산업이 함께 발전했다. 거꾸로 뒤집힌 브이(V)자 형의 독특한 지형을 가진 강진군에는 중앙으로 좁게 그러나 길게 강진만이 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안에는 넓게 펼쳐진 간척 농경지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전했고, 주변에서 흘러든 강진천·탐진강 등의 영향으로 바지락·꼬막·망둥이·갯장어 등 수산업도 활발하다. 강진청자박물관은 9세기부터 15세기를 상징하는 다양한 문양이 들어간 도자를 전시하고 있다. 아래는 13세기에 제작된 청자상감모란문정병. 이처럼 만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 탓에 강진군은 앞서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중국, 일본, 물론 아라비아 등 각국의 무역상들과 초기부터 교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통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중심에 자리했던 것 가운데 하나로 고려청자를 꼽을 수 있다. 강진은 고려청자 생산과 유통에 여러모로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원료인 고령토와 규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했으며, 북쪽의 크고 작은 산과 가까워 땔감을 구하기도 쉬웠다. 다 구워진 청자는 남쪽의 해로를 통해 쉽게 수송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특히 고려의 독자성을 상징하는 ‘상감기법’의 도자는 고려 후기에 크게 성행했다. 흙으로 도자를 먼저 만들고 조각칼로 문양을 새긴 다음, 도려낸 문양을 자토와 백토로 메워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기법으로, 마치 그림을 그린 것처럼 문양의 경계가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전국의 청자 가마터 가운데 절반가량인 180기가 강진에서 발견됐다. 사당리의 강진청자박물관에서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청자를 전시하고 있다. 교역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강진은 이후 조선시대에도 그 명맥을 이어갔다. 특히 15세기 초 전라도와 제주도 등을 총괄하는 육군 총 지휘부 ‘전라병영성’이 들어서면서 폭증한 물류에 대한 수요는 자연히 상인의 등장과 시장 활성화를 부추겼다. 탁월한 장사 수완과 강인한 기질을 가진 상인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 이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남도를 대표했던 이들의 재화 유통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강진군은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5월 30일부터 팔도장터관광열차를 개통한다. 관광객들은 열차를 타고 강진을 방문해 전통 시장을 느껴보고 지역에 얽힌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코레일 홈페이지 참조 http://www.letskorail.com ) 강진은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이는 봄철에 찾는 것이 아름답다. 사진은 만덕산 백련사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의 풍경. 강진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관광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안식처인 ‘다산초당’과 붉은 동백꽃으로 가득한 ‘백련사’, 일년 중 딱 5일만 꽃을 피우는 모란을 기다리며 ‘모란이 피기까지’를 지은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월출산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사찰 무위사 등이 대표적 관광지로 꼽힌다. 육지와 가우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는 오직 두 다리로만 건널 수 있다. 가우도 산책길에서는 도심의 소음과 공해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강진만의 중앙에 선 가우도는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여행지다. 가우도는 약 80km의 만을 따라 줄지어 선 8개의 섬 가운데 유일하게 14가구를 품은 유인도다. 그간 아는 사람만 찾는 비밀 같은 곳이었으나 섬을 한 바퀴 빙 두른 약 2.4km의 평화로운 산책길이 입소문을 타면서 남도의 2,000여 개 섬을 제치고 올해 초 전라남도의 ‘가고싶은섬’에 선정됐다. 현재는 육지와 연결하는 ‘출렁다리’에 청자 모형을 한 중앙전망대, 800m 높이의 짚와이어 등 설치를 앞두고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강진군 가는 길: < br/>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나주역에 도착해 이동하거나, 고속버스를 통해 강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다. 글 이승아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연합뉴스 slee27@korea.kr
게시일 2015.06.04. -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국’ 하면 외국인들이 으레 떠올리는 고궁, 한복, 김치, K팝 같은 이미지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한국생활 20년차인 벤자민 주아노(Benjamin Joinau) 홍익대 교수가 쓰고 엘로디 도르낭 드 루빌(Elodie Dornand de Rouville) 씨가 삽화를 그린 ‘스케치스 오브 코리아(Sketches of Korea)'가 바로 주인공. 한국소개서 ‘스케치스 오브 코리아(Sketches of Korea)'를 출간한 벤자민 주아노 홍익대 교수(오른쪽)와 엘로디 도르낭 드 루빌씨. 이 책은 한국의 음주문화, 폭탄주 제조법, 경조사 축의금, 대중목욕탕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의 등 밀어주기 등 외국인들에게 사뭇 낯선 풍경으로 비쳐지는 것들에 주목한다. ‘훈남’ ‘꽃미남’ 같은 표현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의 외모중시 성향을 설명한다. 책을 쓴 주아노 교수는 현대뿐만 아니라 전통과 예술,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그림을 곁들여가며 사실에 입각해 설명한다. 그는 특히 김치의 제조법과 역사를 소개하며 ‘김치는 프랑스인에게 바게트, 이태리인에게 파스타와도 같은 한국 민족의 유산(national heritage)이자 만병통치약(panacea)과도 같다’고 평가한다. 전통예술에 대해서는 한국의 산수화, 풍속화, 고가구 등 한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소개하고 있다. 주아노 교수를 만나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와 문화, 그리고 한국과 프랑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벤자민 주아노 교수는 한국문화와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소개가 담긴 책을 쓰기 위해 ‘스케치스 오브 코리아’ 를 펴냈다고 밝혔다.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한국 온지 20년 정도 됐는데 당시에는 한국에 관한 외국어로 쓰인 책, 특히 프랑스어책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 한국 오기 전에 관련 책이 없어 한국행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에 와서는 길찾기도 너무 어려웠고 특히 문화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한국과 인연 있는 일부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바쁜 사람들에게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1998년 한 프랑스 출판사와 함께 한국 여행 책을 썼다. 이것이 나의 첫 한국 관련 책이다. 이 책도 나름 유용하지만 단순히 길찾는 방법보다, 사람들이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문화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쓰기 전, 6~7년 전에도 서점에 가면 영어로 쓰인 한국 소개서는 있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봤다. 책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거의 한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책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외국인의 시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소개하는 책들이었다. 예를 들어 매듭, 포대기 등은 한국적인 것이지만, 역사적, 문화적인 깊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책들은 보기에 예쁘지만 유용하지 않은 ‘커피테이블책’에 불과하다. 그래서 엘로디 작가와 함께 책을 구상할 때, 일단 사람들은 책을 볼 때 글을 읽기 보다 이미지를 먼저 보니까 그림을 넣어 더욱 효과를 높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각적인 이미지를 먼저 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림으로 본 한국’ 책을 쓰기로 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한국, 조선시대 말기모습이 아닌 현재의 한국모습을 보여주고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통문화도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만 들어가면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사람이 갓 쓰고 한옥에서 살고 한복을 입고 생활하진 않으니까. 이런 것만 소개하면 외국인에게 한국을 제대로 소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재 사회까지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사회까지 간단하게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책제목은 ‘스케치 오브 코리아(Sketches of Korea)’지만 내용은 ‘스케치’처럼 가볍지 않다. 오히려 깊고 자세하다. 그럼에도 책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처음에는 가볍게 하고 싶었다. 비주얼가이드북처럼. 그런데 책을 준비하다 보니까 그림에 간단한 설명만 넣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다 보니 비주얼+텍스트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학술적인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케치’가 자세한 실제 그림이 아닌 밑그림이니까 책제목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이드북이지 깊이 있는 학술논문은 아니다. 요즘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K-팝이든 한국영화든 한국문화의 일부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한국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K-팝, 한국영화, 삼성, 싸이, 강남스타일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역사가 깊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재미있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50년 전에는 한국에 대해 전쟁, 88올림픽 등 간단한 것만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외국에서 한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제주도 해녀, 궁중음식, 인사동 다도문화, 학생들이 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 높은 교육열 등 몇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20년 전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더 깊이 있게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마치 사람을 만날 때 처음에는 이름, 나이 등 기본적인 것만 주고받지만 나중에 서로 친구가 되고 더 알게 되려면 더 깊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깊이 가는 책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한국을 더 깊이 접근하고 한국이 비빔밥, 전쟁, 88올림픽, K-팝, 한국영화, 삼성, 싸이, 강남스타일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민족과 정치 등에도 관심을 갖고 한국을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한국의 단편적인 내용이 아닌 더 넓은 문화, 사회적인 면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주아노 교수. - 음주문화, 결혼식 축의금, 목욕탕 때밀이 등 특수한 경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택한 기준이 있다면? 원래는 시리즈로 월간지에 기고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엘로디 작가와 함께 40개 정도의 테마를 잡았다. 그러다가 책을 만들 때 편집자와 함께 몇 번 조율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편집자와 의견이 달라 타협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꽃미남’, ‘훈남’ 같은 표현의 경우가 그렇다. 책을 구상할 때는 그 말들이 많이 쓰였지만 책을 막상 준비하는 동안에는 덜 사용되거나 잊혀지게 되었다. 또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훈남’이라는 표현에 대한 저마다의 이해와 정의가 달랐는데 대중문화라서 사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이지만 고민을 하게 됐다. 이런 책은 사실 학술서적보다 더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더 어렵다. 일일히 사실을 다 확인해야 하는데 우리가 늘 당연하게 생각해온 부분을 확인하면 실제로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만물박사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알 수가 없는데, 더구나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전통이나 예술 부문의 경우 특히 내용이 자세하다. 한국인도 모르는 내용이 허다하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만만찮았을텐데?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나중에 한국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땄다. 그 과정에서 참고문헌 구하는 방법도 알았고 관련자료를 많이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자료를 찾아야 할지 알고 있지만 어려움은 다른 것에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옷차림을 예로 들면, 누구나 한국사람은 백의민족이니까 흰 옷을 많이 입었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면, 서로 다른 이론이 너무 많다. 조선시대 초에는 평민들의 흰옷 착용을 여러 번 법적으로 금지한 때가 있었다. 양반만 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과 반대되는 논문도 있다. 평민이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안되고, 어린이, 노인, 양반만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 때부터 이런 법이 나왔다. 그럼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조선시대에 어떤 색의 옷을 입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19세기 한국에 온 외국인의 답사기 등은 한국사람을 다들 흰옷을 입고 있는 독특한 민족이라고 썼지만 하지만 이와 일치하지 않는 학술논문도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므로 이런 부분은 어떻게 다뤄야 할지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14세기와 17세기가 다르고 연대별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은 책에서 다루기에 한계가 있었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신라, 고려시대도 있는데 한국 역사를 이런 책에 담기에는 무리였다. 책을 쓰면서 아직 더 많이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앞으로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 20여 년을 생활하다, 정착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 한국행을 권유받고 온 것이 계기가 됐다. 원래 2년간 있기로 했는데 임무를 마치고 나서 한국에 더 있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체류가 점점 길어졌다. 그때까지는 한국에 아예 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한 10년쯤 살면서 레스토랑 사업을 하게 되었을 때 한국에 뿌리를 내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교수로 일을 해도 대부분 외국인이니까 2,3년 살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레스토랑 하고 회사를 만들어 대표이사가 되니까 그때부터는 나를 다르게 보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이 시선 때문에 스스로 더 안정감을 느끼고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레스토랑을 안 하지만, 그 뿌리 때문에 정착했다고 생각한다. 레스토랑을 한 것은 사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15년 전 일이지만, 그때는 외국인 교수로 일하면서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했다. 제도적인 이유도 물론 있다. 내 전공을 가르치고 싶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미래를 내다봤을 때 레스토랑 사업을 하면 비자도 받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쓰고 연구를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 동안 한국생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반대로 어려웠던 것은 어떤 점인가? 둘 다 같은 답을 들 수 있다.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아주 즐겁고 재미있고 흥미롭고 매일 열정을 느낄 수 있지만 서양인으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은, 매일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삶이었다. 이제 `2,3 년 뒤에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많아진다. 내 정체성의 일부는 한국화된 것 같다. 프랑스 사람이지만 다문화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것 같아 그 과정을 재미있게 발견했다. 동시에 고통스럽고 힘들게 배우기도 했다. 한국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직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법적인 문제도 있다. 사실 이런 것은 넘어갈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나 같은 사람도 한국인으로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인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다음 세대에서는 또 달라질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사실 한국인이 외국에 살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나라마다 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방인도 내국인도 아닌 애매한 영토에 사는 것 같다. 이 영토에 사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고 운명으로, 팔자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딱 10년 전, 이 영토에서 내가 편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공감하기 어려웠거나 특이하게 여겨진 문화나 생활방식이 있었다면? 처음에는 많은 점이 낯설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살아가면서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어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보다 더 많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점이다. 여유가 반드시 휴가를 뜻하는 건 아니다. 보다 추상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와 대상, 하는 일 사이에 최소한의 적당한 거리, 즉 심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요새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강조한다. 경제 발전을 위한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나오려면 정신적인(mental)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이건, 회사원이건, 집-학교, 또는 집-회사만 왔다 갔다 하는 매일 똑같은 생활패턴에서 어떤 창조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한국사람들은 일뿐만 아니라 기관에도 너무 매여있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생산적인지 잘 모르겠다. - 당신의 책에는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 특별히 당신이 매료된 한국의 문화나 예술 분야는? 개인적인 취향인데 민화를 좋아한다. 민화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개념으로 19세기 이전에는 그저 ‘다양한 그림들’로 여겨진 것들이다. 민화의 다양성이 마음에 든다. 조선 말기 서민들의 그림 등을 좋아하고 특히, 서민들이 부적으로 만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상징도 많이 있는 것 같아 재미있고 매력 있다. 집에서 볼수록 즐겁다. 그림이 단순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뭔가 무의식적인, 보편적인 특징을 가진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볼수록 뭔가 느끼는 것이 있다. 벽 하나에 여러 개의 작품을 걸어두고 본다.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한국에 정착한 것은 ‘팔자’라며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주아노 교수. - 해외의 지인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한국의 문화가 있다면? 지금 사는 곳이 인왕산 아래 효자동 서촌이다. 내가 사는 곳에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친구가 한국에 찾아오면 그 동네에 데려간다. 시내, 자연, 산, 도시, 시골, 옛날, 현재, 재미있는 먹자골목, 술자리, 맛있는 식당, 한옥, 시장 등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아주 한국적인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외국인들이 이런 면을 좋아한다. 그리고 무조건 전라도 같은 시골에서 한옥펜션이나 종가집 같은 곳에서 숙박하는 것도 추천한다. - 인문학∙철학에서 문화인류학,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현재 프랑스 식당을 운영하며 전시기획자, 푸드 컬럼니스트, TV음식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해오셨다. 특히 프랑스와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인상적이다. 음식문화에 주목하게 된 계기라도? 한국의 음식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한 적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각 지역 시골을 찾아가서 한국음식 문화를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내용인데 아주 재미있었다. 음식은 아직도 학계에서 낮게 평가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마도 일상적인 삶의 일부라서 하찮게 보고 인문학적인 연구주제로 여기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건 모순이다. 음식은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이고 먹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혁명의 경우 음식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인류학 연구에서 음식 문화공부는 기본이다. 음식이 낮게 평가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는 일상생활을 재발견하는 학계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연구는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주제이지만 연구를 하게 되면 무궁무진하고 깊이 있는 문화연구가 가능하다. 음식을 통해서 한국에 대해서 다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만 잡으면 한국문화에 대해 다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좋아하고 관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음식으로 얼마든지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깊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덫(trap)과도 같다. - 한식을 알리는데 열의를 보이는데, 한국음식 가운데 가장 즐겨먹는 것은? 매우 많아서 하나를 꼭 짚어 말하기가 어렵다.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친구와 같이 비 오는 봄날 먹고 싶은 음식과 추운 겨울에 먹고 싶은 음식, 혼자 있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이 다 다르다. 전체적으로 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시스템, 맛, 다 좋아한다. 한국음식이라는 제도를 몸으로 이해하니까 다 좋아한다. 화려한 궁중요리나 멋진 그릇에 담겨 나오지 않더라도 맛있는 반찬과 밥, 국이 나오는 흔한 백반도 다 좋다. 예전에는 잠깐 참기름 맛에 질린 적이 있었지만 한국음식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일 뿐 지금은 전보다 더 즐긴다. 사실 이것도 여유와 관련 있다. 한국음식의 세계화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적응에 필요한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음식을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 한국과 프랑스는 이질적인 면도 있지만 공유할 것이 많아 보인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프랑스 문학, 철학, 음식, 패션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문화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양국의 문화적 교류의 바람직한 모습은?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문화교류가 활성화되길 진심으로 원한다. 한국과 프랑스는 비슷한 점이 많다. 프랑스나 한국도 마찬가지로 바로 가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파리나 K-팝 같은 이미지도 있지만 사랑에 빠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깊고 오래가는 감정이 생긴다. 프랑스도 그렇다.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매력을 느끼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이해하기 복잡한 나라들이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매력을 느끼게 되면 감정이 오래간다. -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주로 책과 연구활동에 집중하고 싶다. 한-불 교류 관련 일도 계속 할 것이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arete@korea.kr
게시일 2015.06.02. -
한국의 대중문화, 뉴질랜드와 진한 스킨십 진행중
한국에서 비행기로 반나절이 걸리는 인구 4백만의 섬나라 뉴질랜드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4일 뉴질랜드 주간지 선데이스타타임즈 (Sunday Star-Times)는 '한국의 대중문화, 어떻게 확산됐나 (How Korean Cool took over (and why we love it))' 제목의 특집매거진을 펴내면서 뉴질랜드에서 유행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 현상을 집중 보도했다. 특히, 미셸 더프(Michelle Duff)기자는 '키위(뉴질랜드인)들, 한류바람을 타다 (The Kiwis riding the K-Pop music wave)' 제하의 기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K-Pop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과 매력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 5월 24일자 뉴질랜드의 선데이스타타임즈 매거진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집중 보도했다. 이 기사는 최근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JYP 엔터테인먼트사의 오디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렸다. 오디션을 앞두고 긴장해서 손을 덜덜 떠는 소녀, 호주 멜버른에서 아버지와 함께 날아온 소년 등 한국 팝스타를 꿈꾸는 10세부터 24세 사이의 참가자들의 모습을 전하며 주어진 2분 안에 잠재력을 보여줘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현장의 분위기에 대해 보도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현지 오디션은 3년 만에 열렸는데, 현장에 왔던 캐스팅매니저는 "이전엔 아시아계 지원자가 주를 이룬 반면 이번에 좀 더 많은 문화권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셸 더프는 기사에서 "몇 해 전만 해도 생소했던 K-Pop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음악뿐만 아니라 한국의 TV드라마, 영화, 비디오게임, 패션 등 전반적인 대중 문화를 일컫는 '한류'의 인기는 "중국, 남미, 호주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으며 뉴질랜드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지난 24일자 선데이스타타임즈는 JYP 오디션에 참가해 '끼'를 발산 중인 오디션 참가자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았다. 한류의 영향력은 여느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특히 지난 해 열렸던 'K-Pop World Festival'에서 2위를 차지한 오클랜드의 ACE 댄스팀, 오클랜드 대학교의 '케이팝플래닛(K-Pop Planet)'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16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케이팝플래닛은 함께 모여 "한국 TV쇼에 나왔던 게임을 하고 'K-Pop 의 밤' 등 축제를 열며 주변 국가에서 열리는 K-Pop 가수들의 콘서트를 찾아 다닌다. 때로는 일반 대중을 위해 댄스 강연을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K-Pop의 인기에 배경에 대해, 이 신문은 한국 정부의 현명한 투자 방법을 꼽았다. "인구 5천만의 한국은 '국가 이미지 강화'를 명목으로 브로드밴드 시설 및 기술,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집중 투자하며 K-Pop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2012년부터 48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성공의 길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 기사는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문화소통은 양국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심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클랜드 대학교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신청한 학생의 수가 지난 해보다 40% 증가했으며, 지난 2012년 앤드리아스미스(Andrea Smith) 외교부 차관보는 '전통과 현대의 구분 없이 한국의 음식과 음악 등이 뉴질랜드에서 널리 알려지고 있다"라며 "한류는 이제 키위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신문은 "앞서 3월 체결된 한국과 뉴질랜드의 FTA로 인해 양국간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stuff.co.nz/entertainment/music/68734424/the-kiwis-riding-the-kpop-music-wave
게시일 2015.05.28.